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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코드 : 97889331154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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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리산에서 살아가는 눈먼 벌치기 박광호 씨의 삶을 소설로 그렸다. 주어진 삶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눈먼 벌치기, 주인공은 그를 통해 가리산의 전설 ‘니마’를 만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오늘을 살아간다.
소설 속 화자는 잡지에 소개된 가리산의 눈먼 벌치기 이야기에서 오래전 들은 니마를 상기한다.
니마는 가리산에 온다는 전설 속 인물로서,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는 니마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벌치기를 찾아간다. 벌치기는 화자의 요청에 따라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려서 삼눈을 앓고 실명한 벌치기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중 우연히 날아온 벌을 정성으로 키우면서 삶에 대한 꿈을 갖게 되고, 그로써 자신의 삶이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면서 유경순 씨와 결혼하여 세 아이까지 얻는다.
그 사이사이에 닥쳐온 사건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의 전부였던 벌이 떠나고 그의 아내까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또한 개안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짐으로써 모든 희망을 잃게 된다. 그러나 벌치기는 온몸으로 그런 아픔들을 겪어내면서 세 아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돌아온 벌과 함께 희망을 되찾게 된다. 그런 벌치기의 모습에서 화자는 니마를 발견한다.
책 속으로
“난 한평생 젊은이처럼 황혼을 마주 보고 앉아 그분을 기다렸다네. 이만큼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에야 알았지. 비록 그분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기다림이 나를 지탱하게 한 힘이 되었다는 걸.” 노인은 여기서 말을 잠시 끊고 숨을 몰아쉬었다. “언젠가 니마는 꼭 오실 걸세. 아니, 이미 우리 곁에 와계시는지도 모르지.
_16쪽
그의 등 뒤 하늘에서, 지난밤에도 돋아났던 별들이 수없이 돋아나 깜박거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불을 때며 그는 허허 웃었다.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소처럼 그냥 허허 웃었다.
_31-32쪽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천천히 일어섰다. 통 안에서는 아직도 벌 떼 소리가 윙윙 들렸다. 그때 머릿속으로 한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저 벌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잘 길러보라고 보낸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아무리 작은 곤충이라도 정성을 쏟으면 사람의 뜻을 따라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믿음처럼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마침내 그는 벌치기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꿋꿋이 헤쳐 나가기로 마음을 굳게 다졌다.
_41쪽
벌치기는 솔 향기 가득할 솔잎 술을 내왔다. 신이 나서 음식을 나르며 마을 노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에 섞여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 흥분된 듯하니, 알 수 없는 기쁨이 온몸을 휩쌌다.
_65쪽
또 한 가지는 막연한 느낌을 통해서다. 벌과 함께 있으면 무엇인가 가슴으로 조용히 전해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리 없는 말과 같은 것이어서 마음을 고요히 하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벌치기는 종처럼 그 말에 따른다.
_81쪽
유경순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이만큼의 꽃을 따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이슬을 받아먹고 자란 온갖 풀꽃이 아내와 두 딸의 머리 위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모양을 뽐냈다. 꽃향기가 잔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_132-133쪽
그 모든 일은 사람이 저질렀다. 벌은 그러지 않았다. 열심히 꿀을 모으며 남의 것은 절대 탐내지 않았다. 속일 줄도 몰랐고 자신을 해롭게 하지 않으면 결코 공격도 하지 않았다. 벌치기는 벌을 기르면서 인생을 배웠다. 벌은 그에게 훌륭한 스승이었다.
_185쪽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옆에서는 혜영이 삼 남매가 쌔근거리며 자고 있다. 아내가 그에게 주고 간 선물, 이 귀한 아이들…. 그는 아이들 뺨에 한 번씩 자신의 뺨을 갖다 대며 훌륭하게 잘 키우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것은 아내가 자신에게 맡긴 거룩한 일일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벌치기는 자신이 굉장히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그는 정말 행복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_187-188쪽
불어오는 바람에 니마의 은빛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흩날렸다. 등 뒤, 다래 덩굴 위로 피보다 더 붉은 황혼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호흡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어떤 말이 들려왔다. 그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같기도 했으며 가슴으로 울려오는 천둥소리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기쁘게 살아가라!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삶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_197쪽
책머리에
지은이: 홍기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1986년)와 동화(1990년)가 당선되었고, 물뿌리개아동문학상과 대교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초등학교 7차 교육과정 5학년 국어 교과서에 동화 <옥수수빵>과 <아침 햇살 오르거든>이,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시 <바다 같은 사람>이 실렸다.
지은 책에 「사람이 아름답다」·「누미 누나」·「하늘을 나는 자전거」 등 33권이 있고, 현재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며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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